2021년 회고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고를 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이직을 하게되어 2년 10개월여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며 첫 직장을 떠나고 정리하는 마음으로 회고를 써보려고 한다.
사실 올해의 목표 중 이직은 매우 바래왔던 목표였지만, 현실적인 나에게 어떻게보면 현실과 먼 목표였고, 가장 가시적인 목표로는 회사 내에서 개발할 수 있는 개발 부서로의 이동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포기하고 있었던 이직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2021년 회고의 내용을 보면 올해 어디론가 꼭 떠나고 싶다고했는데, 정말 떠나게 되었다!)
입사할 때 지원한 직무가 바로 어플리케이션 개발&운영 직무였다. 이 직무 워딩 그대로만 생각하면 내가 정말 하고싶었던 일이었다. 사실 합격했을 때, 취준생으로써는 IT 업계가 어떻고, SI, SM이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단순히 대기업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기뻐했던 것 같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길게 느끼지 않고 졸업도 전에 취업을 확정지었다는 사실에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마냥 즐거웠던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심지어 신입 프로젝트로 파이썬 Django를 활용하여 하둡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하면서, 첫 직장 생활이 순조롭게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시작하게 되고 부터 퇴사를 앞둔 지금까지 느낀 점들을 조금 기록해보고자 한다.
내가 첫 직장에서 직무가 썩 맘에 들지 않았음에도 다녔던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첫 직장에서 만난 첫 팀원 분들은 너무 다들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특이했던 사람은 있었어도, 나쁜 사람은 없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앞으로 이 인연들을 어떻게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정말 존경할만한 팀장님을 만나보기도 하고, 업무적으로도 태도적으로도 본 받을만한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소속된 팀에서 각자의 업무가 너무나도 독립적이다 보니, 특히 나는 혼자 시스템을 맡았고, 혼자 일하다보니 더 친해지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그래도 첫 직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특히 회사에서 만난 여러 동기들은 평생 갈 만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것만으로도 내 첫 직장에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회사 자체가 개발 중심의 업무가 아니고, 개발과는 동떨어진 환경이었기 때문에, 개발적으로는 크게 배울만한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조금 남는 것 같다.
나의 첫 직장이 최고의 회사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대기업 타이틀을 달고 있는 회사이다 보니 괜찮은 수준의 연봉과 괜찮은 수준의 복지와 제도들을 경험한 것 같다. 물론 요즘 수 많은 회사들이 더 높은 연봉과 더 좋은 문화, 복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대기업에 대해서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어느정도의 네임밸류(개발자 커리어에서는 아니지만)를 가지고 회사를 다닐 수 있었음에 감사함이 있었다. 사실 그러한 점 때문에 혹시 직무가 맞았더라면, 내 성격의 특성상 더 오래 다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내 시스템을 맡으면서, 시스템과 관련된 기본적인 운영 업무부터 AIX, 리눅스, 윈도우서버와 같은 다양한 OS로 이루어진 50여대의 서버 및 스토리지등을 관리하며 깊지는 않지만 넓은 인프라 지식과 아키텍처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PM으로써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프로젝트 준비 프로세스(개발요청-타당성검토-추진안검토-소싱-계약)와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며 이슈 관리, 요건 정의, 일정 관리, 투입 인원 관리 등 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수차례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와 프로젝트를 위한 소통 능력 등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개발자로써는 도움될지 모를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던 것 같다.
일단 회사를 다니며 야근을 해봤던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워라밸이 매우 좋았던 것 같다.(물론 진리의 부바부) 그렇다고 항상 일이 수월하고 원할하게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야근을 꼭 해야할 상황들은 아니어서 매우 좋은 워라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던 것 같다. 물론 해외 쪽 장애 지원이나, 국내 배포 작업 등을 주말에 진행해야 했기에, 주말에 일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 또한 항상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 팀의 경우 평균적으로 주 3회의 재택 근무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재택 근무를 하면서 어느정도는 게을러졌었을 수도 있으나, 재택근무로 인한 삶의 질 향상과, 출퇴근 시간 절약을 통해서 회사 업무를 끝내고 나서는 개인 공부와 동아리 활동, 사이드 프로젝트 등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스터디 모임이나, 도서/강의 구입 지원 등도 부지런히 활용하여 많은 지원을 받고 여러가지로 회사 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던 것은 좋았다.(물론 회사 내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면 베스트…!)
여러가지 장점들이 모여 결정적인 단점이 되었던 것 같다. 나름 괜찮은 대기업, 좋은 워라밸, 좋은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이상향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보면 계속해서 목표를 포기하고 안주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눈만 높아져서, 첫 직장을 탈출하는데 있어서 그런 부분들도 여러가지 제약사항이 되었던 것 같다. 성장이 정체되고, 이직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러한 환경이 오히려 독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가장 멘탈적으로 쉽지 않았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내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간간히 현타가 왔다. 이 업무가 내 개발 커리어에 어떠한 도움이라도 될까? 라고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여기서 경력을 계속해서 쌓아갔을 때 과연 내가 경쟁력 있을까? 물경력만 쌓아가는 건 아닐까? 그리고 개발 직무로 전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주변의 개발자 친구들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 같은데, 나만 정체되어 있고, 퇴보하는 느낌이 들 때가 가장 멘탈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서비스 IT에서 SM/SI 기업 출신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던지 하는 그런 느낌도 받았던 것 같다. (어찌보면 하는 일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 같다.)
사실 첫 직장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개발 커리어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은 접어갔던 것 같다. 물론 계속해서 개발 공부도 하고 개발 동아리도 참여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3년차인데 이미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년차가 되면서는 이제 중고 신입으로 입사하기는 내 스스로도 3년의 시간이 아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번 코딩테스트의 벽에 가로막히면서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만큼 어찌보면 내심 포기에 가까웠고, 팀 이동을 목표로 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너무 재미있었어서, 그냥 이렇게 회사 다니면서 좋아하는 개발은 취미로 해도 되겠다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지금 첫 직장을 떠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다. 솔직히 내가 뭔가 잘했기 때문에 이직하게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했던 나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도 분명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와 같은 목표가 있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런 분들에게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조금의 희망이라도 얻어가시면 좋겠다.
앞으로 새로운 도전에 있어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그토록 원했던 성장을 마음껏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