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회고 글에서 막연하게 올해는 커리어적인 유의미한 결과를 얻고 싶다고 적었었는데, 감사하게도 정말 이직을 하게 되어 나의 커리어 두 번째 이직에 대한 회고를 해보려고 한다. 이직 직후에 회고를 작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하기도 해서 거의 반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회고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직한 회사에서 반년쯤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직의 만족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느낀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인 것 같다.
먼저 이직하면서 주위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이직했는지였다. 사실 이직의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직을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부터 적어보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 부분은 다양한 도메인에 대한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은 조직과 환경에 대한 경험을 의미한다.
전 직장을 다니며 업무에 몰입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개발을 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배움도 많았고, 많은 성장을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속해서 들었던 생각은 지금 이게 최선일까?
라는 생각이었다. 전 직장이 두 번째 직장이었지만, 프런트엔드 개발자로서는 첫 번째 직장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개발 문화, 조직 문화, 업무 플로우, 동료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모두 다 만족스러웠다.(유일한 비교군이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개발 직군으로써 다른 직장은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환경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할 근거가 부족했다. 물론 다른 곳에 다니는 지인들이나 경험을 들어볼 순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직을 통해 다른 환경을 더 경험해 보면서 더 나은 개발 문화, 조직, 동료, 협업, 업무 방식 등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보자!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전의 이직을 통해서도 느꼈었지만 나는 도전하고 후회하더라도 도전하고 나서 책임지는 게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전 직장을 떠나기로 하고, 팀장님과 면담할 때 팀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어떠한 선택에 대해 정답과 오답은 없다. 다만 내 선택이 정답이 되게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먼저, 지금 환경이 내가 FE 개발자로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일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사실 이 부분은 도메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었는데, 전 직장의 도메인은 물류 도메인이었다. 사실 물류 쪽 애플리케이션들의 특징은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자가 일반적인 고객이 아닌 물류센터 운영 담당자나 작업자라는 점과 디자인적인 요소보다는 업무 효율 극대화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도메인 자체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내가 하는 일이 비즈니스 임팩트가 크다는 것이었다. 물류가 서비스에 매우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보니, 좀 더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좀 더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 실제 업무 효율이 향상하고 그것들이 실제 생산성 지표에 반영되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개발자로서는 매우 뿌듯하고 좋았다. 실제로 물류센터에 출장을 가서 애플리케이션을 써보면서는 더더욱 그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기술적인 개선을 통해 실제 비즈니스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입사할 때는 적자였던 회사가 퇴사할 때는 흑자로 돌아서는 경험도 해봐서 좋았다!
하지만 FE 개발의 관점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아쉬움이 많았다.
사실 물류 도메인의 서비스가 대부분 외부 사용자에게 공개되는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회사의 제한적인 디자인 리소스는 주로 커머스 쪽에 할당되었고, 내가 일했던 2년간 한 번도 충분한 디자인 리소스를 지원받지 못했다. 기획자분께서 열심히 준비해 주신 피그마가 있다면 다행이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단순히 지라 티켓에 담긴 기획 사항만 보고 화면을 개발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의 UI/UX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다 보니 디자이너분이 계셨으면 훨씬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효율성/편리성을 중시하다 보니 정말 심미적으로 볼 때는 별로인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FE 개발자로서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찔림을 많이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더 나은 디자인을 보면서 배우고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서, 디자인 리소스를 충분히 받는 환경에서 개발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물류 도메인은 비즈니스 임팩트가 매우 큰 도메인이다. 물류 애플리케이션 장애가 나면, 고객이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문한 상품이 고객에게 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샛별 배송, 로켓 배송과 같이 속도가 중요한 시장에서는 고객 경험과 만족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원인에서 비롯되어 내가 느낀 바로는 기술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직과 팀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신규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되도록 이전 서비스에 문제가 없었다면 같은 기술 스택을 도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새로운 스택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보수적인 부분을 상쇄할 정도의 장점과 어필이 없다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일관적인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버스 팩터(bus factor)를 줄이기 위해서 강한 컨벤션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컨벤션이 강하면 일관적인 서비스 레벨을 유지하기 유리하고, 실제로 결원이 발생했을 때, 같은 컨벤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공백을 쉽게 메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조직 관점에 있어서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개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컨벤션이 어떠한 프레임으로써의 작용도 있어서 그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더 나음에 대해서 고민하게 어렵게 만드는 제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 컨벤션이 제대로 잘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컨벤션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피드백과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느껴서 좋았지만, 이 컨벤션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부정적인 면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보수적인 태도와 강한 컨벤션은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던 것 같다. 더 많은 기술에 대한 경험, 트렌드를 실무에 적용해 볼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갈급함이 이직의 이유가 되었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이직의 이유에 보상이나 복지가 아예 없는 케이스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첫 직장의 복지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두 번째 직장에서는 있다 없으니까 느껴지는 공허함이 많았다. 특히 회사에 다니면서 입사 초기보다 복지가 늘어나지는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경험을 했을 때, 실질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데 악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지금 비즈니스가 위태로운가?”, “직원들한테 너무 아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복지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입사할 때 알고 가는 부분이지만, 중간에 복지 사항이 사라지는 것은 직원들의 사기에 영향이 있으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이직을 통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보상과 복지 환경을 바랐다.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직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고, 사실 구체적인 플랜은 없었다. 그러던 중 일단 지원해 보자는 생각으로 지원했고, 주변 지인들이 추천해 주기도 해서 감사히도 평소 가고 싶었던 N사와 D사의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일찍 생겼다. 하지만 그때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이직에 대한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두 번의 면접은 모두 광탈하고 말았다.
평소 너무 가고 싶었던 회사들이었기 때문에 탈락에 대한 좌절감은 상당했지만, 스스로 너무 미흡했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 번의 면접을 통해 만난 면접관분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해주신 질문들을 곱씹어보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매우 큰 자극이자 동기 부여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두 번의 좌절이 없었다면 그 이후에 이직도 없었을 것 같다. 혹시 이직을 희망하지만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일단 도전하고 좌절하고, 그 좌절을 바탕으로 다시 도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탈락의 자극을 바탕으로 그 이후부터는 열심히 공부했다. 이직에서 느낀 속빈 강정
이라는 나에 대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 지원해 보고 면접 경험을 늘려가고 자극을 통해 성장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사실 지금 이직하게 된 회사도 그 계획의 일부였다. 이 회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모르기도 했고, 또 부정적인 정보들도 많았기에 일단 열심히 준비했으니 조금은 나아졌는지 경험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때는 이 회사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특이한 것이 면접이 무려 세 시간 반이 소요되는 블라인드 면접이었는데, 그 면접의 경험이 진이 빠지고 힘들었지만, 굉장히 좋았다. 먼저 블라인드라는 것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사람의 배경이나 경력들을 고려하지 않고 선입견 없이 기술적인 측면과 커뮤니케이션적인 측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채용에 대한 스탠다드가 높게 느껴졌다. 붙게 된다면 함께 일할 동료들은 높은 스탠다드를 통과한 뛰어난 동료들이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면접을 경험하면서 면접관들로부터 예상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회사를 선택하면 변화해야 할 것이 많았다. 항상 강남권에서만 일하다가 판교 쪽으로 권역이 바뀌는 것이기도 했고, 그에 따라 자취해야 했기 때문에 삶의 큰 변화를 불러와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택한 것은 항상 도전했을 때 얻는 것이 머물렀을 때 얻는 것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바탕으로 느꼈던 이직에 대한 후기를 남기자면, 모든 측면에서 전보다 만족스럽기 때문에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회사의 큰 비전이 마음에 들고, 그 비전에 함께 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되었다. 이전 기업들도 물론 저마다의 비전이 있었겠지만, 그 비전이 나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입사 전에는 몰랐는데 입사 후에 생각보다 큰 비전을 가진 회사라는 것이 맘에 들었고, 그 비전을 위해 모든 직원이 포커스 되어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이 밖에도 뛰어난 동료들, 매우 빠른 업무 리듬, 마음껏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환경, 업무에만 몰입할 수 있는 복지, 책임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분위기 등 모든 부분에서 좋았다.
아직 많은 프로젝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프로젝트 드랍도 경험해 보고, 팀 이동도 경험해 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피드백이 빠른 환경에서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는 마인드로 일해가고 싶다.
이직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니 이직의 모든 과정을 통해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이번 이직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이 결국은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내가 일하는 순간순간 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더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들을 잘 기록하여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느낀 것들을 실제 업무에서 적용하여,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그 과정을 즐기며 일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또다시 면접을 보고 이직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 스스로 준비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후회 없이 내실을 다져야겠다.